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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을 보내며.

 

해가 가기전에 블로그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블로그를 돌보지 않았는데, 사실 무슨 포스팅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사정이 제일 컸다. yes24에서 쇼핑을 하며 평소에 보고 싶었던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를 잔뜩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다. "이창", "39계단",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다이얼 M을 돌려라", "현기증" 등등. 아이씨디에서 나오는 디비디는 질은 좋지 않지만, 그래도 히치콕의 영화를 소장하고 있다는 기분은 각별한 거다. 그런데  디비디는 포장도 뜯지 않은채 바로 책장으로 가버렸고... 나는 어쩐지 의욕이 사라졌음을 느낀다.

날씨가 추워지니 사진을 찍으러가기도 요원하다. 새 렌즈를 샀는데도 왠지 신나지 않아... 나는 테스트 겸 눈이 쌓인 놀이터를 몇 장 찍어보고는 카메라를 상자에 집어넣어버렸다.

이제는 술도 마시기 귀찮다. 얼마전에 10월 말쯤 담갔던 배주를 거르긴 했다. 향도 맛도 썩 멋지게 우러나왔다. 사실 이 술은 연말에 같이 마시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담근 거였다. 하지만 사람은 떠났고, 어쨋거나 술은 맛있게도 익었다. 그릇가게에서 술을 옮겨담을 병을 고르며, 나는 어쩐지 인생이란 재미없는 농담같다는 생각을 했다.

새 해가 오기전에 무언가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의욕이 생겨야 분주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몸을 바삐 놀려야 의욕도 생기는 법이다. 오늘은 새로 IBT스터디를 시작했다. 기실 보름 전부터 사람을 모았는데, 대학원에서는 도저히 지원자가 없어서 싸이월드에 있는 학부 클럽에 모집글을 올려서 겨우 세명을 채웠다. 이제 06학번인 공대생 남자애 하나와 갓 스무살이라는 09학번 법대생이다. 2월에는 시험을 보고 올 해가 가기전에 외국에 나갈거라는 자신만만한 남자애와 3학년이 되기 전까지 사법고시를 보고, 그 이후에는 유학을 생각해보겠다는 야심만만한 여자애를 보고 있자니, 나는 어쩐지 힘이 솟는 느낌이다. 젊은이랑 같이 있으면 젊어진다는게 이런 느낌인건가-_-

내일은 집 근처 일본어 학원에 등록하려 간다. 올 해 내내 일본어를 공부한다고 했으면서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나도 이제 일본 애니나 드라마에 취미를 붙여봐야겠다. 애니야 예전에 "강철의 연금술사"나 "R.O.D"같은걸 재미있게 봤었다. "아즈망가 대왕"은 무척 즐겼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드라마의 경우 과장된 연기 스타일을 싫어하는 탓에 취미를 못붙였었는데... 뭐 취향이란 종종 변하는 법이니까.

하여튼 블로그도 이제 종종 돌봐줘야지. 무엇인가 쓰고 싶을 때가 있는데 하얀 바탕 위에 점멸하는 커서를 보고 있자면 갑자기 모든게 심상하게만 느껴졌었다. 오랫동안 쓴다는 것의 즐거움을 잊고 지낸것 같다. 조금씩 조금씩 되살리고 싶다.

by 알모따심 | 2009/12/28 20:33 | 픽션(들) | 트랙백 | 덧글(0)

가을,

 

이젠 거의 지나가 버렸다.

by 꽝철이 | 2009/11/08 14:10 | 알레프 | 트랙백 | 덧글(0)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바스터즈"는 한마디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펄프픽션"이다. 독립된 시퀀스가 느슨하게 연결되어 영화를 만드는 구조, 끊임없는 타란티노식 수다, 폭력, 불행한 우연, 영화에 대한 무수한 인용들... 이런 것들이 모여서 "바스터즈"를 만들고 있다.
나는 애초에 이 영화가 타란티노식 "쉰들러 리스트"나 "글루미 선데이" 같은 아우슈비츠 영화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배경은 나치 점령하의 파리이고 '유태인 사냥꾼' 한스 란다에게 가족을 몰살당한 여인이 주인공이지만,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나치 영화처럼은 흘러가지 않는다. 신경질적인 히틀러나 자아도취적인 괴벨스, 느끼할 정도로 유려하고 영리한 전문가 나치 친위대장 등은 하나의 스테레오 타입에 가깝지만, 타란티노는 그들을 자기식의 캐리커쳐로 활용하고 있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한스 란다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고, 또 그것에 능숙하며, 스스로의 비열함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영화에 부여하고 있는 독특한 폭력의 미감은 분명 인상적이지만 한스의 악행은 사실 그가 나치인 것과는 큰 상관이 없다. 그는 애초에 효과적으로 폭력을 사용할 줄 아는 타란티노식 캐릭터일 뿐이다. 이 점은 정체불명의 악센트를 구사하는 미국군 중위 '아파치' 알도 레인도 마찬가지인데... 그는 나치의 악행을 저지하기 위해 싸우지 않는다. 알도 레인은 그저 폭력에 도취된 몸만 큰 어린아이 같은데, 그건 그의 부하 병사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정말 재미있게 나치를 때려잡고 머릿가죽을 벗긴다...

결국 "바스터즈"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이야기를 제공한다. 그것은 폭력을 효과적으로 휘두를 줄 아는 두 사내가 대결하는 이야기다. 물론 이는 쇼사나를 지나칠 정도로 과소평가하는 것이기는 한데, 이는 사실 타란티노가 쇼사나라는 인물을 너무 소홀히 다룬 탓이 크다. 가령 쇼사나와 한스의 대결은 하나의 챕터로 만들어질 자격이 있었다. 쇼사나의 드라마틱한 복수는 분명 장엄했지만 그녀와 한스가 충분한 서스펜스를 만들었다면 그 울림이 더 컸을 것이다. 서스펜스는 타란티노의 장기이기도 한데... 왜 쇼사나를 그렇게 듬성듬성 넘겨버렸는지 잘 모르겠다.


결론짓자면, "바스터즈"는 내가 타란티노에게 기대했던 딱 그만큼을 제공해주는 영화이다. 모든 것을 영화적 장난으로 돌려버리는 특유의 스타일은 역시나 흥미진진하다. 다만 내가 당시의 독일 선전 영화들을 더 잘 알고 있었다면 훨씬 흥미진진 했을듯. "조국의 긍지(The pride of nation)"에 나오는 장면들이 분명 2차 세계대전 때 숱하게 제작된 전쟁 영화에 대한 패러디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 외에도 이것 저것 많은 인용들이 나온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_-

by 차가운도시꽝철이 | 2009/11/05 22:29 | 픽션(들) | 트랙백 | 덧글(0)

배술을 담그다

 


작은 크기의 배 4개와 35도짜리 소주 1.8리터로 담갔다. 설탕은 살짝 넣었는데... 술이 너무 달지 않을까 걱정이다. 과실주는 수분이 많아서 도수가 조금 내려간다길래 집에 있는 흑설탕을 몇 숟가락 집어넣었다. 백설탕이 있음 좋았을텐데 처음이라 그런지 생각처럼 되지 않는 일이 조금 있는 것 같다. 배도 조금 더 집어넣어서 병을 꽉 채울까 하다가 술이 너무 맹맹해질까봐 그만두었다.

아무튼, 내 손으로 담그는 첫번째 술이다. 새 해가 올 때 쯤에는 맛있는 술이 되어있으리라 생각한다.

by 차가운도시꽝철이 | 2009/10/25 17:52 | 알레프 | 트랙백 | 덧글(3)

디스트릭트 9

 


"디스트릭트9"은 솔직히 SF로서는 그리 좋은 작품이 못된다. 영화를 보는 중,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많은 무기들이 남아있는데도, 저 외계인들은 그 흔한 통신기 하나 확보하지 못한걸까? 고도의 문명을 가진 저 외계인들은 왜 조직된 사회를 갖지 못하고 있나? 인간들도 마찬가지이다.  MNU로 대표되는 외계인 통제 기구는, 오직 그들의 무기 테크놀로지에 관심 있을 뿐, 외계인들의 문명과 사회구조, 혹은 항성간 드라이브의 기술 등에는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인다. 아니, 어째서?

대답은 간단하다. 이 영화는 그런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인간과 외계 문명의 만남을 거창하게 포장하는 아서 C. 클라크 식의 비전을 기대하면 안될 것이다. "디스트릭트9"은 그보다 더 직설적이고, 조금은 뻔뻔하며, 소박한 농담이다. 이 영화는 그리 진지하게 아라파트 헤이트로 대표되는 인종차별의 정치적 함의를 다루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늑대와 춤을"과 "플라이"를 미묘한 비율로 섞어 놓은 것 같은 영화다. 우선 주인공 비커스는 남아공 주류사회의 성공한 (백인) 인텔리로 주요한 직책을 맡고 현장에 파견된다. 여기까지는 "늑대와 춤을"이다. 그러나 비커스는 외계인 사회 안에 고립됨으로써, 그들을 바라볼 기회를 얻고, 혹은 사랑에 빠져 적과 아군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외계인에 의해 감염되어 외계인이 되어간다. 여기서부터는 "플라이"다. 손톱이 빠지는 장면은 그냥 "플라이"의 소박한 오마쥬라고 할 수 있다. 변이가 가져오는 흉측스러움과 놀라운 힘은 영화 후반부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축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비커스의 '변이'를 향해 뻗치는 인간의 욕망이다. 더 강해지겠다는 욕망은 파시즘적인 정부의 과학기술, 무정부주의적인 갱단의 부두적 주술을 모두 삼키고 있다. 이 '흉측한 육체'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이 영화를 노골적으로 만드는 동시에, 단순히 '인종차별' 담론을 넘어서는 힘을 부여한다.

그래도 난 "디스트릭트9"이  SF로서 조금 더 신중했어야 한다고 본다. 크리스토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비커스의 행동은 분명 숭고하지만, 사실 그들에게는 가능한 선택항이 많이 있었다. 우선, 먼저 모선에서 비커스를 치료한다음 다시 비커스를 지구에 내려주고 떠난다는 선택도 가능하겠고... 사실 이건  SF로서의 자질 이전에 이야기의 논리성 문제이기도 하다. "디스트릭트9"에는 그런 구멍이 많다. 그런데 영화는 자신의 모든 결점을 알면서도 슬며시 모른척 넘어가는 인상을 준다. 마치 "나도 이게 다 어정쩡한 거짓말이라는 것은 알아. 그래도 재밌으니까 좀 봐달라구" 라고 말하는 듯 한데... 이 부분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뻔뻔한 농담 같기는 한데, 그 정교하지 않음이 의식한 것인지 한계인지는 분명치 않다. 나는 이 노골적인 게임스러움에서 나오는 모종의 한계였다는 생각이다.

지적할 곳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디스트릭트9"은 즐거운 영화다. 이정도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다면 "디스트릭트 10"이  나와도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by 차가운도시꽝철이 | 2009/10/23 15:59 | 알레프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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